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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느 귀용의 편지

귀용 부인의 서신은 매우 광범위하여 인쇄본이 5권에 달했다. 그녀의 글쓰기 스타일은 다소 분산되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종교적 조언을 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비슷한 내용이자주 반복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선택하고 재배열하는 것이 그녀의 편지를 문자 그대로 완전히 번역하는 것보다 더 수용 가능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편집자에게 떠올랐다. 이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재작성과 압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감정에 도달하고 그녀의 종교적 경험을 공정하게 설명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졌다. 1767년에 출판된 그녀의 편지의 흥미로운 서문에서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경 다음으로 귀용 부인의 글만큼 가치 있는 어떤 글도 세상에 주어졌다고..
귀용 부인의 서신은 매우 광범위하여 인쇄본이 5권에 달했다. 그녀의 글쓰기 스타일은 다소 분산되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종교적 조언을 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비슷한 내용이자주 반복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선택하고 재배열하는 것이 그녀의 편지를 문자 그대로 완전히 번역하는 것보다 더 수용 가능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편집자에게 떠올랐다. 이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재작성과 압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감정에 도달하고 그녀의 종교적 경험을 공정하게 설명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졌다. 1767년에 출판된 그녀의 편지의 흥미로운 서문에서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경 다음으로 귀용 부인의 글만큼 가치 있는 어떤 글도 세상에 주어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귀중한 보물 중에서 그녀의 편지는 가장 희귀합니다. 거룩하신 분의 기름부음을 받아 진리를 알게 된 모든 사람은 그녀의 신성한 글에 동의합니다."
잔느 귀용은 1648년 4월 18일,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의 부유한 귀족 가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으나, 자녀 교육보다 사교계나 자선 사업에 관심이 더 많았던 어머니 때문에 가정 안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성장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로 많은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음에도 부모님의 뜻에 따라 16살 때 22살 연상인 남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남편의 병수발, 시어머니와 하녀의 극심한 학대로 그녀의 결혼 생활은 비참했다.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귀용 부인은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게 되고, 주님을 만난 후 줄곧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갔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 주님과 동행할 것을 서원했다. 이후 제네바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순종한 그때부터 그녀의 삶에는 새로운 박해와 오해, 비난과 수치가 시작된다. 그럴수록 그녀를 통해서 주님께 돌아오는 영혼은 더욱 많아졌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백성들을 부르시는 귀한 도구로 쟌느 귀용을 놀랍게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얻어지는 의롭다 함”과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그녀는 가톨릭 당국과 루이 14세에 의해 이교도라고 정죄 당한 채, 8년 동안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출감한 후에도 길을 잃은 자들에게 길을 찾는 법을 알려주며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을 지켜 나갔던 쟌느 귀용은 1717년 6월 9일,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70세의 나이로 본향에 돌아갔다. 주요 저서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도”(도서출판 NCD),”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생명의 말씀사),”영혼의 폭포수”(기독교문서선교회),”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순전한 나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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